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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A 칠공주 각 구단의 전성기 그리고 부활

by Juli_AN 2025. 4. 2.

이탈리아 세리에A 칠공주 관련 이미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세리에A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축구 팬들이 열광하던 최고의 리그였습니다. ‘칠공주’로 불리는 7개 명문 구단이 존재했고,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과 감독들이 이탈리아 무대에서 각축을 벌였습니다. 그 시절 세리에A는 축구의 모든 것이었고, 그 어떤 리그보다 깊고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세리에A 칠공주가 무엇인지, 각 구단의 전성기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리에A 칠공주

‘칠공주’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생겨난 별칭이지만, 세계 축구계에서도 인정될 만큼 이 시기의 세리에A는 전례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1990년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했고, 이를 기점으로 축구 인프라와 시장이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는 자국 선수뿐만 아니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의 톱 플레이어들이 몰려들면서 단숨에 세계 최고의 무대로 올라섰습니다. ‘칠공주’는 단순히 상위권 7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팀들은 챔피언스리그, UEFA컵, 컵 위너스컵 등 유럽 대회에서 강세를 보였고, 리그 안에서도 강력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이 7개 구단은 각각 독특한 축구 철학과 팬층, 지역적 특성을 가졌기에 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웠습니다.

  • 유벤투스: 이탈리아 최다 우승 구단이자 전통 강호
  • AC 밀란: 챔피언스리그 최강팀, 테크니컬 한 축구의 상징
  • 인터 밀란: 꾸준한 상위권, 유럽에서 저력 발휘
  • AS 로마: 남부 이탈리아의 자존심, 공격적인 플레이
  • SS 라치오: 2000년대 초반 부흥, 우승 도전 성공
  • 파르마: 중소구단의 반란, 유럽대항전 활약
  • 피오렌티나: 바티스투타 중심의 공격 축구

이들은 단순히 강한 팀이 아니라, 전략, 자본, 육성, 전술의 밸런스를 고루 갖춘 구단이었기에 ‘칠공주’라는 개념이 지금까지도 축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각 구단의 전성기와 명장면

칠공주 각 팀은 모두 특별한 캐릭터와 전술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유벤투스는 리피 감독 체제에서 3-5-2 시스템을 완성하며 실리축구의 정수를 보여줬습니다. 199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3년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위업은 지금도 이탈리아 구단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록 중 하나입니다. 당시 주전 선수로는 델 피에로, 비에리, 지단, 페루치, 페라라 등이 활약했습니다. AC 밀란은 사키 감독의 압박축구를 계승한 팀답게, 뛰어난 전술 조율 능력과 전방위 공격 전개가 특징이었습니다. 말디니, 바레시, 코스타쿠르타로 이어지는 철벽 수비 라인과 세도르프, 카카, 인자기 등의 공격진은 완성형 팀의 전형이었습니다. 특히 1993~2007년 사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5회 진출, 3회 우승을 거둔 성과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인테르 밀란은 칠공주 시절 전반에는 다소 성적이 아쉬웠지만, 자네티, 비에리, 크레스포, 베론 등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강세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1997년 UEFA컵 우승은 팀의 저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팀은 무리뉴 감독 부임 전부터 꾸준한 투자를 통해 강팀으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AS 로마는 2000~01 시즌 카펠로 감독 지휘 아래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탈리아 출신 레전드 프란체스코 토티와 아르헨티나 스트라이커 바티스투타의 콤비 플레이는 많은 팬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토티의 환상적인 패스와 바티스투타의 폭발적인 골 결정력은 로마 축구의 꽃이었습니다. 라치오는 시메오네, 크레스포, 네스타, 스탄코비치 등으로 구성된 전술적 밸런스의 대명사였습니다. 세리에A 우승과 컵대회 2관왕 달성, 유럽 대회 준결승 진출 등 단기간에 눈부신 성과를 냈으며, 이는 대규모 투자와 전술 혁신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파르마는 칠공주 중 가장 혁신적인 중소구단이었습니다. 네빌, 부폰, 칸나바로, 튀랑, 베론, 크레스포 등이 뛰었고, UEFA컵과 코파이탈리아 우승으로 유럽 무대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파르마는 유소년 시스템도 뛰어나 향후 많은 스타를 배출한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피오렌티나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트로피는 없었지만, 바티스투타라는 상징성과 뛰어난 공격력을 기반으로 세리에A 상위권에 머물렀습니다. 포르투갈의 루이 코스타, 디 리비오 등 플레이메이커 중심의 창의적인 축구는 많은 팬층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세리에A의 과거와 현재

칠공주 시절 세리에A는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매 경기 스타 선수들의 정면 대결이 펼쳐졌고, 각 팀이 가진 축구 철학이 달라 전술적 다양성도 매우 풍부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가 속도와 피지컬, 라리가가 기술 중심이라면, 세리에A는 그 모두를 전략적으로 혼합한 '축구 전술의 실험실'과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세리에A는 4대 리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구단을 보유했으며, UEFA 컵에서는 이탈리아 팀들끼리 결승전을 치를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했습니다. 당시 한국 팬들도 SBS 스포츠나 Sky Life를 통해 세리에A 생중계를 보며 바티스투타, 토티, 지단, 인자기, 말디니 등 슈퍼스타들의 경기를 주말 밤마다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2006년 칼치오폴리 스캔들은 리그의 몰락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유벤투스의 2부 강등, AC밀란의 벌점, 인테르의 대체 우승, 라치오·피오렌티나의 징계 등은 리그 전체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후 자본의 유입이 줄고, 주요 스타들이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로 이적하면서 리그 경쟁력도 저하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 세리에A는 서서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폴리, AC밀란, 인터밀란이 리그를 차례로 우승하며 구도에 변화가 생겼고, 유벤투스는 다시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 중입니다. 또한, 아틀란타, 로마 등도 유럽 대항전에서 경쟁력을 보이며 ‘포스트 칠공주’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리에A 칠공주 시절은 단순한 축구의 전성기를 넘어,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이었습니다. 스타 플레이어들의 경쟁, 다채로운 전술 실험, 지역색 강한 팬 문화가 공존하던 시기였기에 그 기억은 더욱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칠공주 시절의 세리에A를 그리워하며, 다시 한 번 그 전성기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탈리아 리그는 칠공주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스타 영입과 유소년 육성, 전술 혁신을 통해 서서히 ‘그 시절의 향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세리에A의 황금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세리에A는 그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설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