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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창단, 성장, 그리고 라이벌

by Juli_AN 2025. 4. 2.

2001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첼시FC 선수들 관련 이미지

첼시 FC는 1905년 창단 이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명문 구단입니다. 런던 서부를 연고로 하는 이 팀은, 창단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세계적인 구단으로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 자본의 유입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첼시는 국내외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첼시의 창단 배경부터, 현대 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르기까지의 성장 과정, 그리고 역사 속에서 형성된 라이벌 구단들과의 관계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첼시 FC의 창단과 초창기 역사

첼시 FC는 1905년 3월 10일, 런던 풀럼 지구의 스탬포드 브리지를 기반으로 창단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장이 처음부터 첼시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풀럼 FC가 사용하던 구장이었지만, 당시 구단과 경기장 소유주인 거스 미어스는 풀럼과 협상이 결렬되자 새로운 구단을 직접 창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첼시는 이례적으로 창단과 동시에 풋볼 리그 2부가 아닌 1부에 참가하게 되며, 런던의 새 축구팀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초기 첼시는 빠르게 팬층을 확보하고,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로 많은 관중을 끌어모았습니다. 1915년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팀의 성장이 잠시 멈추게 됩니다. 이후 몇 차례의 리그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면서도 런던의 주요 구단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1955년에는 테드 드레이크 감독의 지휘 아래 구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듯, 잉글리시 리그 1부에서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첼시의 이름을 전국에 알립니다. 하지만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며 ‘미완의 대기’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FA컵 우승과 컵 위너스컵 등 몇몇 트로피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팀 내부의 재정 문제와 경기장 노후화, 선수단 관리 실패 등으로 인해 혼란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으며, 이 시기 첼시 팬들의 충성도와 지역 커뮤니티의 힘이 클럽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첼시 FC의 글로벌 구단으로의 성장

첼시 FC가 진정한 명문 구단으로 자리잡게 된 전환점은 2003년, 러시아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구단 인수였습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해외 자본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던 시기였고, 아브라모비치는 첼시를 통해 축구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그의 첫 시즌부터 첼시는 거액의 이적료를 통해 스타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으며, 감독으로는 포르투에서 유로파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젊은 명장 조세 무리뉴를 데려오면서 유럽 전역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무리뉴 감독 체제 하에서 첼시는 2004-05, 2005-06 시즌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이 시기 리그 최소 실점 기록과 최다 승점 기록도 경신하며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습니다. 드록바, 램파드, 존 테리, 마켈렐레, 체흐 등 팀의 핵심 선수들이 만들어낸 팀워크는 지금도 첼시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스쿼드로 평가받습니다. 이후에도 안첼로티, 히딩크, 디 마테오 등 여러 감독들이 팀을 이끌며 FA컵, 리그컵, 유로파리그 등 다양한 트로피를 쌓았습니다. 특히 2012년,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대행 체제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승부차기로 꺾고 구단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순간은 첼시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이후에도 2021년, 토마스 투헬 감독 체제에서 다시 한번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유럽 무대에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최근에는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과 구단 소유권 이전 문제로 인해 새로운 도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을 떠났고, 미국 컨소시엄인 보엘리 그룹이 새 소유주로 등장하면서 팀은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동시에 추진 중입니다. 유망주 중심의 선수단 구성과 감독 교체를 통해 미래의 명문 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첼시 FC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

첼시의 역사에서 라이벌 구단과의 경쟁은 클럽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라이벌은 바로 아스날입니다. 두 팀은 런던을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서로 다른 축구 철학과 팬 문화로 인해 오랜 시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아스날이 유소년 육성과 전통적 패싱 축구에 집중했다면, 첼시는 자본과 스타 파워로 무장한 팀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인 성격을 보입니다. 또한 토트넘 핫스퍼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런던 북부를 연고로 하는 토트넘과의 경기는 언제나 치열한 감정 싸움이 뒤따르며, ‘런던 더비’ 중에서도 가장 격한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특히 2015-16 시즌 ‘배틀 오브 더 브리지’ 경기에서 양 팀이 보여준 폭발적인 경기력과 감정은 양 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경기는 당시 레스터시티의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리버풀과의 경쟁도 매우 특별합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양 팀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주 만나며 유럽 무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FA컵, 리그컵 결승에서도 여러 차례 맞붙으며 ‘현대 라이벌’로 성장했습니다. 스티븐 제라드, 드록바, 램파드 등이 활약하던 시기엔 경기가 열릴 때마다 국가적인 관심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첼시와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특히 무리뉴와 퍼거슨 감독 시절에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놓고 매 시즌 박빙의 승부를 벌였고, 200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맞대결은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경기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이 경기에서 첼시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지만, 이후 복수의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지며 라이벌 구도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이처럼 첼시는 단순히 트로피 수집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구단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문화, 팬 충성도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라이벌과의 경쟁은 클럽의 성장에 자극제가 되었으며, 현재의 첼시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요소입니다.